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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이슈

송대관, '해뜰날'과 함께한 파란만장한 인생

by Maccrey 2025. 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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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트로트계를 대표하는 가수 송대관이 2025년 2월 7일, 향년 78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그의 인생은 한 편의 소설처럼 다사다난했다.

가난 속에서 피어난 꿈

1946년 전라북도 정읍에서 태어난 송대관은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의 조부 송영근 선생이 3·1운동에 참여한 죄로 옥고를 치렀고, 일본인들에게 재산을 몰수당하며 가족은 극심한 가난 속에서 살아야 했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어려움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대한민국 독립을 위한 가족의 희생을 긍지로 삼았다.

긴 무명 생활, 그리고 '해뜰날'의 대성공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가수의 꿈을 안고 서울로 올라와 1967년 '인정 많은 아저씨'로 데뷔했지만, 남진과 나훈아라는 거대한 벽 앞에서 크게 빛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1975년 발표한 '해뜰날'이 공전의 히트를 치며 국민가수로 발돋움했다.

'쨍하고 해뜰날 돌아온다'는 희망적인 가사는 힘든 시기를 살아가는 국민들에게 큰 위로를 주었고, 송대관은 1976년 각종 가요대상을 휩쓸며 가수왕에 올랐다.

미국 이민과 사업가로서의 삶

성공을 거머쥐었지만, 당시 변화하는 대중문화 속에서 어려움을 겪으며 그는 1980년 돌연 미국으로 떠났다.

미국에서 샌드위치 가게, 슈퍼마켓, 쇼핑몰을 운영하며 큰돈을 벌었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을 잃지 않고 1988년 귀국했다.

이후 '혼자랍니다', '정 때문에', '차표 한장', '네박자' 등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트로트 4대 천왕' 반열에 올랐다.

사기 논란과 거액의 빚

그러나 순탄치 않은 인생은 다시 한 번 시련을 맞이했다.

2013년, 그의 아내가 부동산 투자 사기로 기소되었고, 송대관 또한 연루 의혹을 받았다.

다행히 2015년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아내의 대출에 연대 보증을 섰던 그는 약 280억 원의 빚을 떠안아야 했다.

투병 속에서도 음악에 대한 열정

여러 해 전 그는 담도암 투병을 시작했지만, 음악에 대한 열정은 끝까지 놓지 않았다.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몸이 쇠약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방송 출연을 이어가며 대중과 소통했다.

지난 1월 19일, KBS '전국노래자랑' 서울 성동구 편에서 초대 가수로 출연한 것이 그의 마지막 무대가 됐다.

국민가수의 마지막 길

그의 별세 소식이 전해지자 많은 팬과 동료들이 애도를 표했다. 정원오 서울 성동구청장은 "'해뜰날'은 내일의 꿈을 키우던 유년 시절, 긍정의 힘을 알려준 18번이었다"며 그를 기렸다.

빈소는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9일 오전 11시, 장지는 서울추모공원이다.

그의 노래는 많은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었고, 이제 그는 영원히 우리 곁에서 노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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