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석유시추 사건: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굴욕적인 역사 (시간대별 정리)

2024. 6. 8. 16:32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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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10월 26일

오전 8시: 한국 석유개발공사(KODECO)의 탐사선 "태백호"가 목포 해상에서 석유 탐사를 시작합니다.

오후 2시: 태백호가 석유 샘을 발견하고 시추 작업을 시작합니다.

저녁 7시: 일본 해상경비청 순찰선이 태백호를 발견하고 영해 침범으로 체포합니다.

1968년 10월 27일

오전 9시: 일본 정부는 한국 정부에 공식 항의합니다.

오후 2시: 박정희 대통령은 일본 정부에 항의하며 태백호의 석유 시추 작업 중단을 명령합니다.

저녁 7시: 태백호는 석유 시추 작업을 중단하고 일본으로 압송됩니다.

1968년 10월 28일

오전 9시: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에 공식 사과합니다.

오후 2시: 박정희 대통령은 국회에서 목포 석유시추 사건에 대한 사과 연설을 합니다.

저녁 7시: 한국 국민들은 박정희 대통령의 사과 연설에 분노와 실망감을 표합니다.

1968년 10월 29일

오전 9시: 한국 언론은 목포 석유시추 사건을 대대적으로 보도합니다.

오후 2시: 서울에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납니다.

저녁 7시: 박정희 대통령은 비상계엄령을 선포합니다.

1968년 10월 30일

오전 9시: 한국 정부는 언론 검열을 강화합니다.

오후 2시: 반정부 시위 참가자들이 체포됩니다.

저녁 7시: 한국 사회는 탄압과 공포의 분위기에 휩싸입니다.

목포 석유시추 사건은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굴욕적인 역사적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한국의 주권 침해에 대한 일본의 무례함과 박정희 대통령의 무능함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억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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